SBS 2022 슈퍼모델 : 더 그레이스 국민투표 1위 임시연 인터뷰

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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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22 슈퍼모델 선발대회 더 그레이스’에서 국민 투표 1위를 차지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셨나요?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돈을 벌기 위해 모델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저라는 사람이 육아에만 갇혀있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자기개발도 함께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제가 겪고 있는 육아의 삶과 대중들이 겪고 있는 삶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저를 공감해 주며 투표를 많이 해주셨어요. 감사한 마음에 투표를 진행했던 17일 중 10일 동안 눈물을 흘렸답니다. 

신기했던 일은 인스타로 저를 팔로우 해 주시던 분 중 한 분이 경찰 관련된 일을 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그분들의 커뮤니티(카카오톡 단톡방)에 제가 슈퍼모델 대회에 참여하게 된 스토리들이 알려지게 되면서 경찰분들이 저를 투표해 주셨어요. 게다가 팔로워 분들이 매일 투표하고 있다고 캡처해서 보내주시기도 하셨구요. 제가 온라인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저의 팬분들의 응원을 실질적으로 느끼게 된 사건이었어요.

투표 기간에는 자고 일어나면 투표했다는 인증샷을 DM으로 보내주신 분이 엄청 많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투표 시작 2~3일 만에 국민투표 1위로 올라가게 되었고 막상 1위를 하게 되니 이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대회 참가자 중 사실은 제가 최연소였어요. 대회의 취지가 시니어 모델 선발이기에 안 될 줄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욕심을 내고 싶었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응원해 주는구나..절대 포기 하지 말아야지.’

내가 잘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분들에게는 용기를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국민투표 1위를 이루고 노력하면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가 따라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더욱 행실을 정갈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Q. 대회 과정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너무 간절한 꿈이었기에 긴장을 하게 되었는지 인터뷰를 진행할 때마다 말을 제대로 못했답니다.

인터뷰를 통해서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았어요.

저는 평소에 말하는 것을 재밌게 즐기는 사람이에요. 4천명 앞에서도 강연했던 경험도 있는데 슈퍼모델 대회 중 하는 짧은 인터뷰가 어려웠어요. 인터뷰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찾아 헤맨 것 같아요. 그리고 인터뷰 때마다 많이 울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편집되기도 했답니다.



Q. 모델이라는 직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살 때 모델 지망생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패션모델의 키가 174부터 지원이 가능했어서 1센티미터 차이로 원서도 넣어보지 못하고 패션모델에 대한 꿈만 가지고 있다가 쎄시, 에꼴 등 잡지에서 뷰티 모델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길게 하지는 못했는데 이유는 광고 촬영 전 미팅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제안을 몇 번 받다 보니 어린 나이에 거부감이 생기게 되면서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이후에 승무원의 꿈을 가지고 준비하다가 대한항공 시험에 1차 합격 후 대기하던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인하여 대한항공 측에서 승무원 모집이 무기한 연기되고 12월 경 다시 한번 추락 사고가 일어났어요. 그렇게 또 무기한 대기하다가 승무원 나이 제한이 넘어가면서 지원을 못 하게 되었어요. 키도 딱 1센티미터 차이로 지원을 못하고, 나이도 딱 1살차이로 지원을 못하게 되었었죠.

26살부터 벨리댄서로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다가 결혼과 출산으로 어쩔 수 없이 경력단절이 4년 정도 있었는데 이후 바로 벨리댄서로 활동하기에는 육아와 병행할 수 없는 상황에 지인이 제안을 주셔서 대구 지역의 모델 대회를 나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제가 미시즈 부분에서 1등을 하게 되었어요. 이 대회를 계기로 모델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어요. 대회 이후엔 자연스럽게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해서 제 연령대를 찾는 촬영도 많아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재우고 있었는데 눈에 딱 들어오는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그 대회가 바로 SBS 슈퍼모델대회였고 이렇게 늦으막에 꿈을 이루게 된 거였어요. 



Q. 서울 패션위크 2023 S/S 빅팍 컬렉션에 오르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슈퍼모델 대회의 수상자들에 대한 혜택들 중 서울 패션위크 오디션을 볼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어요. 사실 수상자 전원이 패션위크에 올라가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오디션 기회였습니다. 빅팍 선생님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에는 긴장도 많이 했고 저는 안될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 이유는 6명의 수상자 중 4명만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는데 수상하셨던 모델분들이 이미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유명 모델이셨어요.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오디션을 보게 되었는데 제가 합격이 된 거예요..!

합격 당일 아침에 단톡방에 초대가 되었는데 꿈만 같아서 계속 눈을 비비며 봤었어요. 서울 패션위크에 오르는 모델 수가 생각 보다 많지 않아요. 유명 모델분들이 여러 개의 쇼에 올라가는 경우가 많고 아카데미를 통해 쇼에 올라가기도 하기 때문에 일반 기성 모델이 쇼에 올라가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예요. 그런 무대에 섰다는 것 자체가 프로 모델이라는 딱지가 붙는 거죠. 저는 지금도 빅팍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SBS 슈퍼모델은 탤런트를 많이 갖춘 모델이라면 서울 패션위크 런웨이에 서는 모델은 프로 모델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빅팍 패션쇼에 올라간 것이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Q. 서울패션위크 런웨이 당일에 어땠나요?

런웨이 출발하기 전에 울컥했었습니다. 모델 생활을 하면서 모든 목표와 꿈이 서울 패션위크였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사실은 영원히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슈퍼모델의 수상과 이어진 오디션 속에서 겨우 잡은 티켓이었기 때문에 울컥했습니다. 패션위크에 올라가는 여러 브랜드 중 퀄리티가 제일 높은 빅팍선생님 런웨이에 섰다는 게 너무너무 영광이었고요. 그 날 이후로 많은 모델 동료들이 부러워했었답니다.



Q. 평소에 즐겨 입는 패션은? 유행을 예측해 본다면?

저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스타일이 있었어요. 힙합 스타일이나 캐릭터가 확실한 의상을 좋아했었어요. 예를 들면 스쿨룩이 있겠죠. 저는 오늘은 스쿨룩을 입었다면 내일은 힙합 스타일로 매일매일 다른 패션으로 입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트렌드에는 민감한 편이다 보니 유행하는 컬러나 스타일을 감지하고 다른 분들보다는 한 달 정도 미리 스타일링 한답니다. 예를 들면 뉴진스의 디토가 나오기 전에 한창 스쿨룩을 입고 다녔었어요.

그때 주위 분들이 예쁘다고 말씀해 주셨었는데 나중에 뉴진스가 입고 나오면서 많이 신기했답니다.




Q. 모델을 꿈꾸는 분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모델의 자질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마인드가 치장이 되어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쩐 의류나 제품을 표현하는 직업이다 보니 가지고 있는 인성이나 이미지들이 올곧고 발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의류나 제품을 좋게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패션쇼에 서기 위해 워킹을 준비해야 하고 바디가 관리가 되어 있어야 되고 쇼에 대한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델이 진심으로 하고 싶다면 잘 준비된 마음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Q. 패션쇼 무대감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슈퍼모델 대회에 나가기 전까지는 제가 바랬던 모델의 활동이 아닌 극소수의 활동을 하다 보니 프로 모델로 갈 것인가 즐기는 선에서 일할 것인가 고민을 하던 와중에 전문적인 모델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퀄리티가 있는 작업들만 하기 시작하다가 모델에서 무대 연출가, 기획자로 관련된 일들로 확장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모델을 하던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진행을 하는 과정을 시샘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이미 오랜 기간 벨리댄서로 활동할 때 무용 관련 무대 기획, 안무 창작, 음악 선정 등 무대에서 하는 창작에 대한 연출을 수없이 기획하고 진행하던 사람이었어요. 벨리 무대에서는 움직이는 여러 명의 동선을 맞추어 보던 경험이 있다 보니 패션쇼의 런웨이 동선들이 저에게는 쉽게 작용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연출을 할 때 일반적인 패션쇼 보다 색다르다는 좋은 평을 받기도 하였답니다.



Q. 한복 패션쇼에서 태극기 한복을 입으셨는데 소감이 어떠셨나요?2d55d4f64cb7d.png 

모델 활동 초기에 입었던 이선영 디자이너 선생님 한복이었어요. 태극기 문양 한복이 메인 한복이었거든요. 모델 경력이 많이 않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무용 전공을 해서 워킹이나 몸짓에서 다른 분들과 차별되는 부분이 눈에 띄어 메인 한복을 입게 되었어요.

벨리댄서 한국 대표로 이집트 대회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애틋함이 있던 차에 태극기 문양이 있던 한복을 입게 되어서 아직도 제 카톡에 프로필 사진으로 되어있어요.



Q. 야외에서 한복 촬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당시 하멘 한복이 론칭되는 중이었는데 제가 모델로 제주도에 촬영을 가게 되었어요. 자연 속에서 한복이 바람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선을 표현하고 싶었던 컨셉이었어요.

바닷가에 돌 위에 올라가서 촬영하는 씬이 많이 추웠어요. 바람 부는 곳에 가서 치마도 날리고 머리카락도 많이 날리고 힘든 촬영이었죠. 그러나 사진은 너무너무 멋지게 나와서 만족했었어요.



Q. 모델 대회 심사위원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제일 빠르게 눈에 들어옵니다. 자신감에 차있는 사람들이 눈빛이 살아있고 무대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도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무대 위에 올렸을 때 후보자들의 외모는 사실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가진 자세나 눈빛, 무대 매너 등이 좋으면 제 눈에 빠르게 들어오며 그 사람에게 시선이 가기에 마련입니다. 그것은 예쁜 얼굴을 뛰어넘는 조건입니다. 그래서 자신감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모델로서 몸매 관리를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제가 벨리댄서 18년 활동 중에 3년은 퍼스널 트레이너도 겸했었어요. 지금은 모델을 하고 있기 때문에 패션모델에 적합한 슬림 해질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헐적 단식을 통해 바디라인을 잡아가는 편입니다.



Q. 인플루언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크리에이터 모델을 선발하는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었어요. 친한 지인들과 다 같이 나갔었는데 저 혼자만 합격 한 거예요. 합격 후 제품을 실시간으로 홍보하는 미션이 주어졌어요. 14일 동안 7개의 제품을 공동구매를 판매하는 미션이었어요. 엄청 타이트한 미션이었죠. 부담이 되었지만 시작하게 되었어요. 공동구매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MD와 상의하고 꼼꼼히 준비했었어요.

‘내가 열심히 살아온 것이 맞다면 나를 응원하는 사람은 믿고 제품을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 거야’라는 생각에 ‘아이를 낳고 육아도 하고 모델 활동을 하다가 인플루언서를 하게 되었다. 나는 크리에이터 대회 중이다, 이렇게 공구하는 것이 대회 미션이다.’ 라고 스토리텔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었는데 첫날 엠플 제품을 판매했는데 어마 무시하게 매출이 올라간 거예요. 그래서 업계 사람들이 다들 놀란 거예요. 첫날 첫 라이브에서 제가 신예 스타로 탄생하게 된 거예요. 이렇게 BNT라는 회사와 인연이 닿게 되었어요. 다른 참가자의 불공정한 행동으로 인하여 본선에는 못 올라갔지만 엔터테이너 상을 받고 BNT와 계약을 하고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어요. 결과적으로 BNT와 계약하고 활동을 하게 되어서 좋았어요. BNT는 저에게 서울에 있는 친정 같은 느낌이에요. 제가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하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시고 계십니다.



Q. 휴식이 필요한 때에는 어떻게 힐링하나요?

지금은 일과 육아를 모두 힐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서울에 왔을 때 육아의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에서 힐링을 느낍니다. 반대로 타이트한 스케줄이 끝나고 집에 가면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서 쉴 수 있다는 점에 또 힐링을 느낀답니다. 결혼과 육아 때문에 쉬는 기간 동안 응축된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나날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을 힐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Q. 다양한 활동을 하시고 계신데 모델, 패션쇼감독, 인플루언서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분야는?

모델입니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