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브랜드 유가당 - 박정상&성지은 디자이너 인터뷰

2023-12-06

패션 브랜드 ‘유가당’은 어떤 계기로 탄생되었나요?

박정상 저희는 몬티스, 블라뱅 이라는 각자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어요.

저는 패션쇼나 오프라인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였고 성지은 디자이너는 해외전시를 많이 하는 디자이너였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던 차에 함께하게 된 프로젝트가 유가당이었어요.

저희 둘이 성향이 다른데요, 성실장님은 디자인이나 기술력에 특화되어 있고 저는 기획 마케팅을 잘 하기 때문에 함께 시너지를 내보려고 시작한 프로젝트 브랜드였는데 지금은 거꾸로 메인 브랜드가 된 상황입니다.

성지은 저희가 공연도 하고 해외전시도 다니면서 봤는데 한복 말고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를 다루는 브랜드를 생각하게 되었던 시기가 서로 맞았어요. 프로젝트성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관심 가져주시는 분도 많았고 저희도 좀 더 욕심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유가당이 가진 패션 디자인 스타일이나 특징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성지은 보통 한국적인 브랜드 컨셉하면 모던한 개량한복 등을 생각하는데 저희는 한국의 문화, 예술, 음악, 음식 등 전반적으로 아우르며 캐주얼한 스트릿 웨어에 녹여내어 스토리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유가당 제품들이 언뜻 보면 평범한 캐주얼 웨어로 보일 수도 있지만, 패턴이나 디자인에 우리나라의 역사, 전통, 트렌드, 음식문화 등에 관련된 다양한 모티브나 스토리를 담고 있어요. 

예쁘면서도 한국적인 스토리를 풍부하게 담아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대화의 중심이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고 싶어요.



패션 디자이너의 진로를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박정상 요즘 뼈그맨(뼛속부터 개그맨)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봤을 때 뼈자이너(뼛속부터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저는 원래 특이한 것을 좋아하고 학창 시절부터 엉뚱하고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좋아하고 잘 하는 편이기도 했는데, 고3 때 특별한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갑자기 미술을 시작해서 운 좋게 국민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이후부터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죠. 저는 재능보다는 끼가 있었던 것 같아요. 

후배들이 가끔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재능이나 감각보다 오기와 끈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있어요. 반짝하고 재능만 보여주다가 다른 일로 전향하거나 디자이너계를 떠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살아남아서 버티고 있습니다. “저는 재능은 모르지만 끈기는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성지은 사실 저는 모션그래픽을 하고 싶었어요. 국내에서 패션디자인을 배운 후였는데, 패션디자인 외에 시각디자인이나 영상디자인 등 다른 분야에 더 관심이 가더라구요. 그래서 유학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지원서를 내려는 순간, 갑자기 패션디자인을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가 공부하면서 일도 하면서 ‘이 길이 내 길이구나..’라는 확신을 가졌던 것 같아요.

패션 분야에는 MD, 테크니컬 디자이너 등 꼭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제가 호기심이 많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보고 싶었어요. 디자이너 어시스턴트부터 테크니컬 디자이너, 샘플 메이커로도 일해보고 최종적으로 디자이너를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유학시절은 어땠나요?

성지은 제가 갔던 파슨스에서는 교양과목이 다양했고 꼭 이수를 했어야 했는데 당장 영어를 원어민들처럼 하기는 힘들었어요. 가자마자 교양과목을 잘못 선택했는데.. 수업 전 책을 한 권씩 다 읽고 와서 3시간 동안 토론만 열띠게 하는 거예요. 밤을 새우고 준비해 가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교양과목에서 점수가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유학생들이 언어의 벽 때문에 잘 안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파슨스가 한국 유학생이 많기로도 유명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졸업 후 1년 인턴과정이 있는데, 그 때 남은 한국인 졸업생이 저 포함 딱 두 명이었거든요. 그래서 일을 하면서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 했고요.

패션위크에 참여하는 디자인하우스에서도 일을 했고 맨해튼 안에서 제일 큰 제조 공장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는 일을 했었어요. 그 때 한국에 없는 제조 시설들도 경험하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한국의 제조 환경이 안타깝기도 했어요.

실은 제가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었는데 사회에 나가서는 저 혼자이다 보니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뀌더라고요.



유학 생활이 생각보다 타이트하셨던 것 같아요.

성지은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유학을 갔던 상황이 아니고 한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원 도움 없이 안되는 영어로 혼자 준비하고 유학을 갔던 상황이에요. 뉴욕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1년 인턴쉽 과정이 끝난 후 회사에 다니려면 회사에서 취업비자를 제공해 주어야 계속 미국에 머물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성지은 선배 후배로 만났어요. 저는 사회생활을 하다 디자인 협회에 가입했었고 박실장님은 이미 학생시절부터 가입을 했었고요. 협회를 통해서 함께 전시도 참가하고 마켓이나 팝업스토어에 함께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어요. 저희가 디자인 협회에서 만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답니다. 그런데도 하루에 12번씩 싸워요. 그리고 그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하고 그래요.(웃음)


어떻게 패션 트렌드를 예측하고 분석하며 디자인에 적용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박정상 저는 트렌드를 읽지 않아요.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고 싶고 엉뚱한 발상이 많다 보니 유행하는 트렌드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저는 트렌드를 역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베토벤도 지금은 천재 작곡가로 추앙을 받지만 그 당시에는 ‘시대를 역행한다.’ 또는 괴짜라는 말도 들었었거든요. “트렌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요. 

성지은 박실장님은 아티스트 같은 디자이너라면 저는 “의상 디자인은 철저하게 상업디자인이다.” 라는 생각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최대한 소비자에게 맞춘 디자인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들이 오히려 저한테 디자이너로서 독이 됬던 게 제가 순수하게 하고 싶었던 것을 표현하는 방식을 누른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유가당을 할 때는 순수하게 즐겁게 하자고 시작했어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브랜드를 운영하기 위해서 소비자의 구매, 자금이 필요하잖아요. 지금도 여전히 유가당 안에서 소비자가 바라는 것과 저희가 가려는 지향점 사이의 갭을 줄이는 작업을 계속하는 중입니다.



성지은 디자이너님이 입고 계신 의상의 패턴이 독특해보입니다.

성지은 사실 이 옷은 패턴이 화려하기에 실루엣으로 많이 누른 디자인이에요.

자세히 보시면 셔츠형 원피스인데 이 안에 들어간 것이 용고 단청무늬인데 저희가 핑크 계열로 리디자인을 한 거예요. 소비자분들이 보았을 때 과감한 패턴에 디자인까지 너무 과감하거나 노출이 심하면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기에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도전적이었던 작업은 무엇이었나요?

박정상 “아직 우리의 최고의 프로젝트는 나오지 않았다. 최고의 프로젝트는 다음 프로젝트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성지은 유가당이라는 프로젝트 자체가 굉장히 큰 도전이에요. 저희가 브랜드를 시작하고 운 좋게 패션위크에 들어갈 수 있게 됐었어요. 그 때 패션필름을 제작하였는데 또 운 좋게 경복궁 민속박물관에서 제작할 수 있게 지원을 받았었어요. 저희는 한국적인 컨셉을 하다 보니 해외에 저희의 브랜드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해외시장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였기에 해외전시가 모두 취소된 상황이라 국내 시장에서 빨리 브랜드를 알려서 유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국내에서는 한국적인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어렵더라고요. 사람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이미 알고 있어서 신선하게 다가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가 한, 중, 일 3개의 국가에 공유되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다 보니 한국적인 컨셉으로 중국, 일본 시장에 나가는 것에 어떻게 수위를 조절해야 할지 고심이 많이 되더라고요. 역사적으로 예민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그래서 문화, 종교, 역사적인 부분에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불교문화는 인도까지 공유되는 부분이 있어요. 가수 송가인 씨가 입었던 의상에 불교에서 나온 전통문양인 칠보 문양이 있거든요. 칠보 문양들이 사실 일본, 중국, 인도에도 있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가 영감을 받은 부분이 이런 부분이다.”라고 스토리를 푸는 정도로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국립발레단, 한예종 무용가분들과 함께 하셨던 ‘칠석우’ 프로젝트 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박정상 완성본을 보았을 때는 우아하게 보이지만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제일 큰 사건은 재촬영을 했었던 거예요. 저희가 발표회 날을 잡고 최종 편집을 했는데 결과물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함께 촬영했던 팀이 잘하는 팀이었는데 기획의도가 안 맞았고 발레리나들이 원하는 포인트도 잘 안 살았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전면 재촬영을 결정하고 무용수분들을 다시 섭외하고 촬영팀도 다시 모으고 하면서 제작비가 훨씬 많이 들어갔어요.

성지은 당시에 국립발레단 분들이 해외 공연을 앞두고 있었던 때라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그분들이 휴가를 반납하고 다시 모여주셔서 열정을 태워주셨던 부분이 너무 감사한 부분이에요.

그리고 의상 제작 때 움직임을 살리는 의상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절개, 공간감 등으로 다자인으로 풀어내려고 했던 부분이 힘들었어요. 피팅하고 완성된 샘플이 나오기까지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렸었어요.



디자인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무엇인가요?

성지은 저희가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장 최근에 만든 작업이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이 되는 것 같아요.

박정상 아직 저의 우뇌 속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매일 계속 새롭게 갱신되고 있고요. 저희의 모든 작업에 애착이 있다는 뜻이에요. 아직 저의 ‘브레인 클로젯(우뇌)’에 저장되어 있습니다.(하하)



새로운 컬렉션을 기획할 때, 어떤 순서로 작업을 진행하시나요?

박정상 저는 치약 짜듯이 쥐어짜고 있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에게 미션을 주는 편입니다. 미션을 가지고 목적의식이 있을 때 최고의 집중력으로 최고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할 때 저 스스로를 극한으로 벼랑까지 밀어 넣고 스스로에게 고행을 주는 편입니다.

성지은 저는 유가당 시작할 때는 오방색에 꽂혀서 공부했었는데요 관련된 걸 찾다 보니 칠보 문양을 알게 되었고 전통 문양을 찾다 보니 오금도, 금강산도를 보게 됐고 한국 전통 사탕 옥춘당 같은 것까지 관심있게 보게 되었어요.

국사책이나 사회책에서 봤던 학교 다닐 때 보던 것 외에 저희가 모르던 다양한 것들이 너무 많고 정부에서도 문화포털 같은 곳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나 문양 등을 모두가 사용할 수 있게 개방해준 상태여서 저는 늘 하고 싶은 게 많이 있답니다.



옥춘 스커트는 정말 기발해 보이는데요.

성지은 사실 제가 옥춘당을 사용하여 스커트 디자인 패턴을 그려서 보여주었는데 박실장님은 반대를 했었어요. 그런데 출시를 해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진행하게 되고 박실장님이 입고 계신 수렵도 맨투맨 같은 경우에는 제 입장에서는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패션위크 때 전시를 했었는데 20대 친구들이 지나면서 “이거 어디서 본 건데?” 하고는 수렵도인 것을 모르는 거예요. 거기서 충격을 받고 우리가 패션을 통해 문화를 알리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저희 둘의 생각이 각자 다르다 보니 타인에 의해서 합의가 될 때가 많아요.





컬렉션 개발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박정상 디자이너는 새로울 것을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남들이 안 하는 작업을 하려고 생각해요. 저희가 유가당을 런칭하고 검색하다 보니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40년 전통의 타분야의 업체가 있는 거예요. 저희 패션 브랜드 유가당을 검색순위 위로 올리고 싶어서 노력을 많이 했는데 40년의 아카이브를 이길 수 없었어요.

패션쇼를 하다 보면 검색 순위가 며칠 올라갔다가 다시 그 업체에 밀리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경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벤트 형태로 그 업체와 함께 콜라보로 팝업스토어를 기획 중입니다. 한마디로 차별화 전략을 중점으로 잡고 있습니다.



디자인 작업에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성지은 저희가 가려는 방향과 소비자들이 원하는 선의 균형을 찾는 게 제일 어려워요. 소비자가 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피드백이 오는지 정리를 하는 것 같아요.

박정상 저희 둘이 너무 성향이 다르다 보니 서로 맞춰나가는 작업이 제일 힘든 작업이에요. 유가당의 상품 종류가 많지 않은 이유가 서로 합의가 되지 않으면 출시하지 않기 때문이예요.

성지은 그래도 가끔 서로 합의가 되지 않아서 출시가 안되었던 제품도 시간이 지나고 보았을 때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출시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패션쇼의 분위기를 결정하는데 어떤 요소들을 고려하나요?

박정상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물 위에서 걷는 것도 했었고 비가 오는 무대 연출도 했었고 뮤지컬 요소도 넣었어요. 그래서 제가 서울 패션위크에서 이단아로 불리기도 했었죠.

성지은 박실장님이 그렇게 하는 바람에 마포구청에서 행사 기획을 제안해서 ‘패션콘서트’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진행했었답니다.



두 분의 MBTI는?

박정상 ENFP가 계속 나오고 있어요.

성지은 저는 ESTJ 입니다.



두 분의 성향이 달라서 더 좋은 것들이 나오는 게 있죠?

성지은 결과적으로는 좋은 것들이 많죠. 그 목표지점까지 도달하기 위해 내부에서 험난한 역경을 거치게 됩니다. 저희는 서로 기획안을 만들어서 상대방에게 보여주며 설득합니다.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며 휴식을 취하시나요?

박정상 저는 운동을 거의 매일 합니다. 예전에는 격투기를 했었고 지금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어요. 복싱도 오래 했었습니다. 무도 종류는 거의 다 배웠었어요. 심지어는 카포에라까지 배웠답니다. 쉬기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즐겁게 일을 하다 보니 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성지은 저는 쉴 때는 전화도 잘 안 받을 정도고 쉬는 걸 좋아해요. 돌아다니며 전시도 많이 보고 영화도 많이 보고 있어요.

최근에는 존윅4를 봤었어요. 저는 존 윅 시리즈랑 본 시리즈를 제일 좋아하는데 실적인 격투 장면과 영상미와 색감이 너무 예뻐서 즐겨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성적인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도 좋아해요.



앞으로의 목표와 비전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성지은 앞으로 패션 전래동화집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영상으로 제작하는 패션 화보에 전래동화 스토리를 녹여서 다양한 아티스트 분들과 협력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