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이너 황재근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에 출연하면서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두 번 출연을 했었는데요, 시즌3에 출연하면서 주목을 받았었고 올스타전에서 우승하면서 많이 알려졌습니다.
‘프로젝트 런웨이’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제가 원해서 시작한 방송은 아니었어요.
한국에 귀국하고 패션 브랜드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브랜드 자체가 커머셜한 분위기였고 저는 창조적인 디자인을 좋아하다보니 디자인의 모토와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 안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어 퇴사하게 되었어요.
이후 가족들이 교직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지 추천하셔서 서울대학교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교수님께서 프로젝트 런웨이에 나가보는 것이 어떤지 연락을 주셨어요.
프로젝트 런웨이 PD가 출연자 모집을 위해 서울대학교 의류학과에 연락하였는데 모든 사람들이 저를 추천해서 저에게 연락을 주신 거였어요.
저도 박사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부분이 있어서 도움을 드리고자 출연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프로젝트 런웨이’ 시작 과정이 어떠했나요?
◆신청 마감일 전날 지원서를 급하게 써서 냈는데 결국 시간이 부족해서 다 적지 못하고 지원했어요.
그런데 다음날 제작진에게 전화가 와서 지원서를 채워서 제출해달라고 말씀하셨어요.
서류지원에서 어찌저찌 합격하고 실기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옷을 만들다 보니 원하는 결과물이 안 나오면서 마음을 내려놓고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합격을 하게 되었어요. 예상외로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합격하게 되어 제작진과 MC 이소라씨와 최종 인터뷰를 하게 되었어요.
현장에서 제 캐릭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재밌고 흥미로워하셔서 서바이벌에 참가하게 되었죠.
‘프로젝트 런웨이 올스타전’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저는 실험적인 작업이 기억납니다. 제가 제일 잘하는 작업이거든요. 종이로 옷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제작진과 사람들이 신기하게 봤었어요.
저의 작업 과정을 보고 어떻게 옷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웃었던 분들도 무대 위에서 옷이 멋지게 나오는 모습을 보고 박수를 쳐주셨거든요.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인다는 평가를 들었어요. 특히 제가 원하고자 하는 의도와 디자인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지 긴장하던 순간들이 스릴 있었던 것 같아요.
방송에 나온 출연자들, 심사위원들도 서로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 되면서 업그레이드가 된 것 같아요.
머리를 삭발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제가 23살 이른 나이부터 탈모가 시작되어서 탈모약도 먹고 가발도 쓰고 하다가 너무 불편하고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는 게 싫어서 밀어버렸어요.
당시에 유학 준비로 포트폴리오와 언어 공부 등 해야 할 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헤어샵에 가서 완전히 스님처럼 민머리로 삭발했더니 너무 후련하더라고요. 당시에 젊은 나이에 완전히 삭발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에 헤어 선생님이 많이 놀라긴 하셨어요. 삭발 머리로 홍대를 다녔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처다보더라고요. 머리가 없어지니 얼굴이 너무 심심해서 포인트를 준 안경을 써보기 시작했었어요.
수염은 언제부터 기르셨나요?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이 없다 보니 포인트를 주면 어떨까 해서 수염을 길러서 끝부분을 올려보았는데 그 시기에 방송을 많이 하게 되면서 그렇게 스타일이 굳혀졌어요. 가끔 수염을 깎기도 했는데 방송 관계자들이 저의 캐릭터를 시청자들이 못 알아 볼 수 있다고 강하게 의견을 주어서 그때부터 쭉 기르게 되었어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입학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당시에 입학이 너무 힘들었어요. 동양인 자체가 거의 없어서 전체에서 5퍼센트도 안 됐어요. 동양인 중 일본 학생이 최초 졸업생이 있었고 꼼데가르송의 후예들이 많이 와서 선점을 하고 있었어요. 그 해에 한국인들이 9명 정도 지원을 했는데 저 혼자만 뽑혔어요.
합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포트폴리오는 문제가 없었는데 인터뷰에서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학교에서 원하는 포인트와 제가 원하는 포인트가 달라서 저를 합격시킬지 갈팡질팡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다양한 국적의 지원자를 뽑기를 원했는데 동양인 지원자 중 제가 제일 실력이 좋아 보여서 고민하는 와중이었어요.
이후에 알게 되었는데 월터라는 선생님이 저를 강력하게 추천하셔서 합격하게 되었어요. 합격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하며 감사를 표하자 월터 선생님은 ‘학교생활 하면서 그렇게 기뻐할 만한지 두고보자’라는 식으로 말을 툭 전지고 가버렸어요.
역시 만만한 학교가 아니었던 거죠.
알고보니 월터 선생님이 학과장 선생님이었던 거예요.
입학하고 학교생활에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언어적인면이 힘들었어요.
학교 공식언어는 네덜란드어인데 정확히 네덜란드 방언(사투리)이었어요.
동양인이 배우기에 매우 어렵기 때문에 아시아권 학생들은 영어, 불어, 독일어 등 세 가지 언어 중 학생이 제일 잘하는 언어로 지도해주십니다.
당시에 제가 영어를 못해서 수업 때 웹툰처럼 장면들을 그려서 보여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렇게 계속하면 언어가 늘 수 없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언어 공부를 시작했었어요.
유학 전에 영어를 공부를 하고 갔었는데 미국식 영어나 영국식 영어가 아닌 그 지역 사람들이 통용되는 영어를 사용하다 보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영어 공부할 때 독일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었어요.
유학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독일, 스페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었는데 크리스마스 방학 때 독일 친구가 고향으로 초대를 해줬어요.
크리스마스에 홈파티를 했었는데 기억이 많이 나요. 그 친구 집이 독일, 프랑스, 스위스 국경이 맞닿아 있었던 곳이었는데 한달 정기패스를 옆집에서 빌려와서 저에게 빌려주셨었어요. 친구들과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 다녀왔었던 기억이 나요.
유학 생활이 현재 디자인에 어떠한 영향을 주셨나요?
◆앤트워프 특유의 스타일이 있어서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을 배운 것 같아요.
나의 강점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잘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해야겠다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어요.
구조적인 형태, 질감, 실험적으로 패브릭을 다루는 방법 등 친구끼리도 서로 많이 배워요.
기억나는 친구 중 현재 발렌시아가 디렉터로 있는 댐나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사실 댐나는 학교 다닐 때 흔히 알고 있는 루이비통이나 디올 등 하이엔드 디자인을 추구했었어요.
그런데 지금 댐나가 하는 디자인은 댐나가 학생 때 입고 다니던 스타일로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학생 때 럭셔리 레이블 디자인을 원해서 시작했지만 본인에게 맞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럭셔리의 프레임 안에 본인이 입고 싶어 하는 마이너 감성을 녹여서 새로운 럭셔리를 하게 된거예요.
그래서 볼 때마다 많이 신기해요. 다들 학교에서 만들어진 디자인 정체성이 명품하우스에 가서도 녹아저 있는것 같아요.
앤트워프에서 원하는 디자인의 정체성은?
◆옷을 보면 그 학생이 생각나게끔 해야 해요. 정체성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정답을 정해놓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가 겹치지 않고 희귀할수록 학교에서 좋아했어요.
보통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정답을 정해놓고 교과서 같은 디자인을 추구하다 보니 개성이 없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었는데 저는 좀 특이하고 남다른 디자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졸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실험적인 것에 굉장히 강해요. 실루엣 구현이나 패브릭의 질감 선택, 원단과 오브제의 믹스업을 굉장히 잘 하는 편입니다.
이런 부분은 제가 유학하기 전에 홍대 미대에 다녔던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의상 전공이 아닌 미대였기에 접근방식이 달랐던 것 같아요.
저는 홍대에서 도예과를 전공했는데 흙을 다루던 작업과 설치미술 등을 많이 경험했었어요.
플라스틱, 고무, 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텍스처를 특이하게 쓰거나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을 어우러지게 만드는 부분에서 선생님들께 종종 칭찬을 들었었어요.
작업하는 방식에서 제가 선호하는 것들이 남들이 보기에 낮설어 보일 수 있지만 낮설음을 새로움으로 선보이는 능력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었어요.
새로운 작업을 할 때마다 앤트워프에서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그게 저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엔 그것을 크리에이티브라고 부르더라고요. 창조할 때는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닌 어떤 식으로 창조할지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해요.
반드시 정체성이 있어야 해요.
한국인으로서 유럽에서 유학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학교에서 동양인이 너무 숫자가 적었고 도시 자체가 파리, 뉴욕, 밀라노처럼 대도시가 아니었어요.
벨기에 수도에 이어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긴 했지만, 저녁 8시만 되어도 불이 다꺼지고 어두워지고... 문화적으로 무엇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스파르타 코스로 학교, 집만 왔다 갔다 했었던 것 같아요.
처음 입학했을 때는 다들 파릇파릇하다가도 학년 말쯤 되면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기고 팍삭 늙어요.. 그만큼 교육과정이 험난했죠.
특히 스트레스 해소할 시간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한국 슈퍼도 없어서 음식은 거의 매일 파스타, 감자튀김, 샌드위치 등을 먹었어요.
그리고 나라마다 복지제도가 다른데 앤트워프는 방학때 기숙사(숙소)를 비우면 월세를 삭감해주는 제도가 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방학때마다 한국에 오게 되었고 온김에 다음학기에 작업할 재료를 사러 다녔었어요.
브랜드 제쿤의 첫 시작은 어떠했나요?
◆’프로젝트 런웨이 3’이 끝나고 나서 서울 패션 창작스튜디오에서 신진디자이너를 위한 데뷔 시스템이 있었어요. 사업자를 가진 개인 브랜드가 있어야 해서 제쿤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앤트워프 유학 시절에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저를 재쿤이라고 불렀었어요.
그래서 제쿤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를 등록하고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들어가면서 서울패션위크 넥스트제네레이션으로 데뷔하게 되었어요.

MBC 복면가왕에서 가면 제작을 시작한 계기가 있을까요?
◆앤트워프에서는 가면이라는 소재가 낯설지 않아요.
옷과 함께 쇼에서 사용할 헤드피스, 슈즈 등을 직접 제작해야 하는데 학교에서 가면이라는 오브제를 많이 사용했었고 ‘프로젝트 런웨이’에서도 악세사리 등을 즐겨 했었는데 복면가왕 제작진이 제가 나오는 방송을 보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연락했다고 말씀 하셨어요.
복면가왕에 직접 출연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복면가왕 PD분들이 2년마다 바뀌셨는데 그 때마다 출연해달라고 부탁을 하셨어서 결국 나가게 되었어요. 보컬 트레이너분이 한 달 넘게 레슨을 해주셨는데 노래가 잘 안되더라고요. 직접 출연해 보니 ‘가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진정한 재능이구나.. 그리고 나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달 동안 출연료를 노래방 비용으로 다 쓴것같아요.
1000개가 넘는 가면을 제작하셨는데 그중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면은?
◆제가 가장 처음에 제작했던 김연우씨가 사용한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하현우씨가 사용한 “음악대장” 두 가지가 제일 많이 생각나요.
사실 김연우씨 가면은 테스트로 만든 가면이었어요. 처음엔 제작진이 제 가면이 너무 화려하고 무서워서 노래는 안들리고 가면만 보일 것 같다는 의견이었어요.
당시에 김연우씨와 배다해씨가 대결 구도였는데 두 분의 키 차이가 있다 보니 테스트로 만들었던 가면을 김연우씨에게 씌웠는데 갑자기 위엄이 생기고 카리스마가 보여서 그 가면으로 컨택이 되었어요.
이후에 방송이 대박이 나고 나서 제작진이 복면가왕 역사를 바꾼 최고의 가면이라고 칭찬을 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이후에 가면을 만드는 기준이 실험적이고 패셔너블하고 아티스틱한 가면으로 바뀌게 된 거예요.
황재근님께 가면이란?
◆가면이 할로윈 같은 행사 때 이벤트로 사용하는 도구였다면 사람들에게 즐거움이나 유희를 줄 수 있는 이미지, 이질적이지만 대중적인 이미지로 만든 것, 낮설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제가 일구어냈다는 것에서 영광이었어요.
슬럼프가 왔을 때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법을 다 해봤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방법이 최고였어요.
실험적인 작업들이 마음대로 안될 때는 그냥 잠을 자버렸어요.
자고 일어나면 마인드나 체력이 다시 기본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작업이 잘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산책하고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등 쉬고 나면 생각이 전환이 되더라구요.
데이 오프라고 하죠. 푹 쉬고 나면 릴랙스 모드로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는 것 같아요.
완전히 쉬어버리면 오히려 한 계단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것같아요.
평소에 어떤 운동을 하시나요?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5년 동안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앤트워프 다닐때 몸이 많이 혹사가 되어서 아픈곳이 좀 생겼어요. 그래서 관리하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일 안 하고 쉴 때마다 꾸준히 운동하고 있어요.
특히 가면 만들 때 야간작업이 많았어서 체력은 필수거든요. 그때부터 운동하기 시작해서 5년이나 지났네요.
실제로 운동하고부터 일할 때 더 수월해저셔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필요에 의해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황재근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패션 디자인의 핵심 요소는?
◆프로젝트에 따라 다릅니다. 상업성 모토인 것 인지, 앞서가는 디자인인 것인지, 익숙하지만 기발한 작업인 건인지, 완전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인지에따라 다릅니다.
클라이언트가 있는 경우 디자인의 의도나 시안, 원하는 의견을 듣고 결정을 합니다.
황재근스러움을 몇 퍼센트 녹일 것인지 수위를 조절합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협업이 있다면?
◆공간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인테리어, 소재, 오브제, 의상, 가면 등 모든 것을 황재근스럽게 꾸민 예술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최근 나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있다면?
◆영화 듄입니다. 1980년대에 나온 오리지널 영화부터 최신판까지 좋아합니다.
앤트워프에 있을 때 많이 보고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찾기도 했어요.
사막이라는 공간에서 미래 속의 과거가 혼돈되어 있는 해석을 좋아했었어요.
그리고 듄에 나온 여배우 젠다이아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드레스코드가 파격적인데 소화하는 옷들이 굉장했어서 시대를 앞서간 모습이 좋았습니다.
휴식이 필요할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클래식을 들으며 감정을 컴다운시키고 있습니다.
쇼팽 음악을 많이 듣고 특히 바이올린 음악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하반기에 계획이 있다면?
◆앤트워프 졸업하고 한번도 유럽을 못 갔었는데 한 달 정도 여행을 가보고 싶어요.
유학 시절에 살았던 곳, 파리에서 일할때 있었던 곳, 가보고 싶었는데 못가본 곳들을 여유 있게 가보고 싶습니다.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갈 생각이에요.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목표를 향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운도 또 하나의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날 운이 나를 찾아왔을 때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해요.
나와 맞는 작업의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그것이 저와 딱 맞았을 때 케미스트리가 생기면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순전히 운으로 잘된 사람은 그 실력이 오래가지 않아요.
노력의 과정에서 운을 만나서 잘 된 사람들은 그 실력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답니다.
독자들께 끝인사 부탁드립니다.
◆디자이너 황재근 앞으로 많이 응원해 주시고 기대해 주세요..!

디자이너 황재근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에 출연하면서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두 번 출연을 했었는데요, 시즌3에 출연하면서 주목을 받았었고 올스타전에서 우승하면서 많이 알려졌습니다.
‘프로젝트 런웨이’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제가 원해서 시작한 방송은 아니었어요.
한국에 귀국하고 패션 브랜드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브랜드 자체가 커머셜한 분위기였고 저는 창조적인 디자인을 좋아하다보니 디자인의 모토와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 안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어 퇴사하게 되었어요.
이후 가족들이 교직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지 추천하셔서 서울대학교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교수님께서 프로젝트 런웨이에 나가보는 것이 어떤지 연락을 주셨어요.
프로젝트 런웨이 PD가 출연자 모집을 위해 서울대학교 의류학과에 연락하였는데 모든 사람들이 저를 추천해서 저에게 연락을 주신 거였어요.
저도 박사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부분이 있어서 도움을 드리고자 출연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프로젝트 런웨이’ 시작 과정이 어떠했나요?
◆신청 마감일 전날 지원서를 급하게 써서 냈는데 결국 시간이 부족해서 다 적지 못하고 지원했어요.
그런데 다음날 제작진에게 전화가 와서 지원서를 채워서 제출해달라고 말씀하셨어요.
서류지원에서 어찌저찌 합격하고 실기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옷을 만들다 보니 원하는 결과물이 안 나오면서 마음을 내려놓고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합격을 하게 되었어요. 예상외로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합격하게 되어 제작진과 MC 이소라씨와 최종 인터뷰를 하게 되었어요.
현장에서 제 캐릭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재밌고 흥미로워하셔서 서바이벌에 참가하게 되었죠.
‘프로젝트 런웨이 올스타전’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저는 실험적인 작업이 기억납니다. 제가 제일 잘하는 작업이거든요. 종이로 옷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제작진과 사람들이 신기하게 봤었어요.
저의 작업 과정을 보고 어떻게 옷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웃었던 분들도 무대 위에서 옷이 멋지게 나오는 모습을 보고 박수를 쳐주셨거든요.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인다는 평가를 들었어요. 특히 제가 원하고자 하는 의도와 디자인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지 긴장하던 순간들이 스릴 있었던 것 같아요.
방송에 나온 출연자들, 심사위원들도 서로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 되면서 업그레이드가 된 것 같아요.
머리를 삭발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제가 23살 이른 나이부터 탈모가 시작되어서 탈모약도 먹고 가발도 쓰고 하다가 너무 불편하고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는 게 싫어서 밀어버렸어요.
당시에 유학 준비로 포트폴리오와 언어 공부 등 해야 할 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헤어샵에 가서 완전히 스님처럼 민머리로 삭발했더니 너무 후련하더라고요. 당시에 젊은 나이에 완전히 삭발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에 헤어 선생님이 많이 놀라긴 하셨어요. 삭발 머리로 홍대를 다녔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처다보더라고요. 머리가 없어지니 얼굴이 너무 심심해서 포인트를 준 안경을 써보기 시작했었어요.
수염은 언제부터 기르셨나요?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이 없다 보니 포인트를 주면 어떨까 해서 수염을 길러서 끝부분을 올려보았는데 그 시기에 방송을 많이 하게 되면서 그렇게 스타일이 굳혀졌어요. 가끔 수염을 깎기도 했는데 방송 관계자들이 저의 캐릭터를 시청자들이 못 알아 볼 수 있다고 강하게 의견을 주어서 그때부터 쭉 기르게 되었어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입학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당시에 입학이 너무 힘들었어요. 동양인 자체가 거의 없어서 전체에서 5퍼센트도 안 됐어요. 동양인 중 일본 학생이 최초 졸업생이 있었고 꼼데가르송의 후예들이 많이 와서 선점을 하고 있었어요. 그 해에 한국인들이 9명 정도 지원을 했는데 저 혼자만 뽑혔어요.
합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포트폴리오는 문제가 없었는데 인터뷰에서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학교에서 원하는 포인트와 제가 원하는 포인트가 달라서 저를 합격시킬지 갈팡질팡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다양한 국적의 지원자를 뽑기를 원했는데 동양인 지원자 중 제가 제일 실력이 좋아 보여서 고민하는 와중이었어요.
이후에 알게 되었는데 월터라는 선생님이 저를 강력하게 추천하셔서 합격하게 되었어요. 합격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하며 감사를 표하자 월터 선생님은 ‘학교생활 하면서 그렇게 기뻐할 만한지 두고보자’라는 식으로 말을 툭 전지고 가버렸어요.
역시 만만한 학교가 아니었던 거죠.
알고보니 월터 선생님이 학과장 선생님이었던 거예요.
입학하고 학교생활에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언어적인면이 힘들었어요.
학교 공식언어는 네덜란드어인데 정확히 네덜란드 방언(사투리)이었어요.
동양인이 배우기에 매우 어렵기 때문에 아시아권 학생들은 영어, 불어, 독일어 등 세 가지 언어 중 학생이 제일 잘하는 언어로 지도해주십니다.
당시에 제가 영어를 못해서 수업 때 웹툰처럼 장면들을 그려서 보여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렇게 계속하면 언어가 늘 수 없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언어 공부를 시작했었어요.
유학 전에 영어를 공부를 하고 갔었는데 미국식 영어나 영국식 영어가 아닌 그 지역 사람들이 통용되는 영어를 사용하다 보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영어 공부할 때 독일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었어요.
유학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독일, 스페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었는데 크리스마스 방학 때 독일 친구가 고향으로 초대를 해줬어요.
크리스마스에 홈파티를 했었는데 기억이 많이 나요. 그 친구 집이 독일, 프랑스, 스위스 국경이 맞닿아 있었던 곳이었는데 한달 정기패스를 옆집에서 빌려와서 저에게 빌려주셨었어요. 친구들과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 다녀왔었던 기억이 나요.
유학 생활이 현재 디자인에 어떠한 영향을 주셨나요?
◆앤트워프 특유의 스타일이 있어서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을 배운 것 같아요.
나의 강점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잘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해야겠다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어요.
구조적인 형태, 질감, 실험적으로 패브릭을 다루는 방법 등 친구끼리도 서로 많이 배워요.
기억나는 친구 중 현재 발렌시아가 디렉터로 있는 댐나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사실 댐나는 학교 다닐 때 흔히 알고 있는 루이비통이나 디올 등 하이엔드 디자인을 추구했었어요.
그런데 지금 댐나가 하는 디자인은 댐나가 학생 때 입고 다니던 스타일로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학생 때 럭셔리 레이블 디자인을 원해서 시작했지만 본인에게 맞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럭셔리의 프레임 안에 본인이 입고 싶어 하는 마이너 감성을 녹여서 새로운 럭셔리를 하게 된거예요.
그래서 볼 때마다 많이 신기해요. 다들 학교에서 만들어진 디자인 정체성이 명품하우스에 가서도 녹아저 있는것 같아요.
앤트워프에서 원하는 디자인의 정체성은?
◆옷을 보면 그 학생이 생각나게끔 해야 해요. 정체성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정답을 정해놓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가 겹치지 않고 희귀할수록 학교에서 좋아했어요.
보통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정답을 정해놓고 교과서 같은 디자인을 추구하다 보니 개성이 없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었는데 저는 좀 특이하고 남다른 디자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졸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실험적인 것에 굉장히 강해요. 실루엣 구현이나 패브릭의 질감 선택, 원단과 오브제의 믹스업을 굉장히 잘 하는 편입니다.
이런 부분은 제가 유학하기 전에 홍대 미대에 다녔던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의상 전공이 아닌 미대였기에 접근방식이 달랐던 것 같아요.
저는 홍대에서 도예과를 전공했는데 흙을 다루던 작업과 설치미술 등을 많이 경험했었어요.
플라스틱, 고무, 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텍스처를 특이하게 쓰거나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을 어우러지게 만드는 부분에서 선생님들께 종종 칭찬을 들었었어요.
작업하는 방식에서 제가 선호하는 것들이 남들이 보기에 낮설어 보일 수 있지만 낮설음을 새로움으로 선보이는 능력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었어요.
새로운 작업을 할 때마다 앤트워프에서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그게 저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엔 그것을 크리에이티브라고 부르더라고요. 창조할 때는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닌 어떤 식으로 창조할지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해요.
반드시 정체성이 있어야 해요.
한국인으로서 유럽에서 유학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학교에서 동양인이 너무 숫자가 적었고 도시 자체가 파리, 뉴욕, 밀라노처럼 대도시가 아니었어요.
벨기에 수도에 이어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긴 했지만, 저녁 8시만 되어도 불이 다꺼지고 어두워지고... 문화적으로 무엇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스파르타 코스로 학교, 집만 왔다 갔다 했었던 것 같아요.
처음 입학했을 때는 다들 파릇파릇하다가도 학년 말쯤 되면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기고 팍삭 늙어요.. 그만큼 교육과정이 험난했죠.
특히 스트레스 해소할 시간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한국 슈퍼도 없어서 음식은 거의 매일 파스타, 감자튀김, 샌드위치 등을 먹었어요.
그리고 나라마다 복지제도가 다른데 앤트워프는 방학때 기숙사(숙소)를 비우면 월세를 삭감해주는 제도가 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방학때마다 한국에 오게 되었고 온김에 다음학기에 작업할 재료를 사러 다녔었어요.
브랜드 제쿤의 첫 시작은 어떠했나요?
◆’프로젝트 런웨이 3’이 끝나고 나서 서울 패션 창작스튜디오에서 신진디자이너를 위한 데뷔 시스템이 있었어요. 사업자를 가진 개인 브랜드가 있어야 해서 제쿤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앤트워프 유학 시절에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저를 재쿤이라고 불렀었어요.
그래서 제쿤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를 등록하고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들어가면서 서울패션위크 넥스트제네레이션으로 데뷔하게 되었어요.
MBC 복면가왕에서 가면 제작을 시작한 계기가 있을까요?
◆앤트워프에서는 가면이라는 소재가 낯설지 않아요.
옷과 함께 쇼에서 사용할 헤드피스, 슈즈 등을 직접 제작해야 하는데 학교에서 가면이라는 오브제를 많이 사용했었고 ‘프로젝트 런웨이’에서도 악세사리 등을 즐겨 했었는데 복면가왕 제작진이 제가 나오는 방송을 보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연락했다고 말씀 하셨어요.
복면가왕에 직접 출연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복면가왕 PD분들이 2년마다 바뀌셨는데 그 때마다 출연해달라고 부탁을 하셨어서 결국 나가게 되었어요. 보컬 트레이너분이 한 달 넘게 레슨을 해주셨는데 노래가 잘 안되더라고요. 직접 출연해 보니 ‘가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진정한 재능이구나.. 그리고 나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달 동안 출연료를 노래방 비용으로 다 쓴것같아요.
1000개가 넘는 가면을 제작하셨는데 그중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면은?
◆제가 가장 처음에 제작했던 김연우씨가 사용한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하현우씨가 사용한 “음악대장” 두 가지가 제일 많이 생각나요.
사실 김연우씨 가면은 테스트로 만든 가면이었어요. 처음엔 제작진이 제 가면이 너무 화려하고 무서워서 노래는 안들리고 가면만 보일 것 같다는 의견이었어요.
당시에 김연우씨와 배다해씨가 대결 구도였는데 두 분의 키 차이가 있다 보니 테스트로 만들었던 가면을 김연우씨에게 씌웠는데 갑자기 위엄이 생기고 카리스마가 보여서 그 가면으로 컨택이 되었어요.
이후에 방송이 대박이 나고 나서 제작진이 복면가왕 역사를 바꾼 최고의 가면이라고 칭찬을 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이후에 가면을 만드는 기준이 실험적이고 패셔너블하고 아티스틱한 가면으로 바뀌게 된 거예요.
황재근님께 가면이란?
◆가면이 할로윈 같은 행사 때 이벤트로 사용하는 도구였다면 사람들에게 즐거움이나 유희를 줄 수 있는 이미지, 이질적이지만 대중적인 이미지로 만든 것, 낮설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제가 일구어냈다는 것에서 영광이었어요.
◆여러 가지 방법을 다 해봤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방법이 최고였어요.
실험적인 작업들이 마음대로 안될 때는 그냥 잠을 자버렸어요.
자고 일어나면 마인드나 체력이 다시 기본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작업이 잘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산책하고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등 쉬고 나면 생각이 전환이 되더라구요.
데이 오프라고 하죠. 푹 쉬고 나면 릴랙스 모드로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는 것 같아요.
완전히 쉬어버리면 오히려 한 계단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것같아요.
평소에 어떤 운동을 하시나요?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5년 동안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앤트워프 다닐때 몸이 많이 혹사가 되어서 아픈곳이 좀 생겼어요. 그래서 관리하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일 안 하고 쉴 때마다 꾸준히 운동하고 있어요.
특히 가면 만들 때 야간작업이 많았어서 체력은 필수거든요. 그때부터 운동하기 시작해서 5년이나 지났네요.
실제로 운동하고부터 일할 때 더 수월해저셔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필요에 의해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황재근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패션 디자인의 핵심 요소는?
◆프로젝트에 따라 다릅니다. 상업성 모토인 것 인지, 앞서가는 디자인인 것인지, 익숙하지만 기발한 작업인 건인지, 완전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인지에따라 다릅니다.
클라이언트가 있는 경우 디자인의 의도나 시안, 원하는 의견을 듣고 결정을 합니다.
황재근스러움을 몇 퍼센트 녹일 것인지 수위를 조절합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협업이 있다면?
◆공간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인테리어, 소재, 오브제, 의상, 가면 등 모든 것을 황재근스럽게 꾸민 예술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최근 나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있다면?
◆영화 듄입니다. 1980년대에 나온 오리지널 영화부터 최신판까지 좋아합니다.
앤트워프에 있을 때 많이 보고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찾기도 했어요.
사막이라는 공간에서 미래 속의 과거가 혼돈되어 있는 해석을 좋아했었어요.
그리고 듄에 나온 여배우 젠다이아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드레스코드가 파격적인데 소화하는 옷들이 굉장했어서 시대를 앞서간 모습이 좋았습니다.
휴식이 필요할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클래식을 들으며 감정을 컴다운시키고 있습니다.
쇼팽 음악을 많이 듣고 특히 바이올린 음악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하반기에 계획이 있다면?
◆앤트워프 졸업하고 한번도 유럽을 못 갔었는데 한 달 정도 여행을 가보고 싶어요.
유학 시절에 살았던 곳, 파리에서 일할때 있었던 곳, 가보고 싶었는데 못가본 곳들을 여유 있게 가보고 싶습니다.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갈 생각이에요.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목표를 향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운도 또 하나의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날 운이 나를 찾아왔을 때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해요.
나와 맞는 작업의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그것이 저와 딱 맞았을 때 케미스트리가 생기면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순전히 운으로 잘된 사람은 그 실력이 오래가지 않아요.
노력의 과정에서 운을 만나서 잘 된 사람들은 그 실력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답니다.
독자들께 끝인사 부탁드립니다.
◆디자이너 황재근 앞으로 많이 응원해 주시고 기대해 주세요..!